요한복음13:1-17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2022-2-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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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육목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 조회 5,536회 | 작성일 22-02-15 07:21본문
1. 본문 (요13:1-17)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2. 해석
오늘 말씀은 우리가 많이 들어온 대로 세족식을 통해 “서로 겸손하게 섬기는 모습을 가지라”는 것 보다 또 앞으로 닥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비장함 보다, 더 궁극적인 주제가 있다. 바로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이다.
1)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좀 있다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고 다 도망가고 또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쳤던 베드로도 계집 종의 말에 겁먹고 3번이나 자기를 배신할 줄 아는데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이다.
자신은 이제 24시간 안에 십자가를 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높은지 자리 다툼을 하고 있는데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이다.
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모습이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 주시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사랑이라는 주제는 예수님의 고별설교 (farewell sermon)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13장에서17장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그 절정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인 17장이다. 이 고별설교 패키지가 13장 첫째 절 (13:1)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로 시작하여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17장 마지막 절 (17:26) 로 끝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주제는 예수님의 주권 (sovereignty)이다. 예수님이 “아시고”이다.
2) 아시고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1)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3)
이 모든 상황 (제자들의 배신, 자신의 십자가 죽음 등)은 예수님도 어떨 수 없이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 아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능동적으로 주관하고 계시는 예수님 이다. 즉 He has everything under control인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이때의 상황은 자신이 주로서 또는 선생으로서 겸손히 섬긴다는 것을 show off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 중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또 아무도 예수님이 그 일을 하시리라 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제자들이 전부 예수님의 오른 편 왼 편, 높은 자리 (상석)에 앉으려고 신경전을 벌이느라 발도 씻을 틈도 없이 서로 누가 더 크냐고, 자기가 왜 상석에 앉아야 되는지 서로 다투고 있을 때 예수님이 조용히 일어나서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 씩 씻어 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파워나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안다. 참모총장이 부하들을 사적인 일에 어떻게 함부로 부려먹는지 재벌2세가 회사 직원들에게 욕을 하며 어떻게 갑질을 하는지 듣고 보았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지금 제자들에게 이런 일들을 하도록 시키실 수 있었고 또 그런 위치에 있었지만 스스로 겸손하게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 제자들 발 앞에 앉아 그들의 발을 씻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발을 씻기는 것은 하인이나 하는 천한 일이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표현하는 말을 보라.
(막1:7)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왜 신발끈을 푸는가 하면 신발을 벗기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샌들을 신어서 더러운) 발을 씻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즉 침례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의 발을 씻는 하인의 일을 하기에도 너무 황송할 정도라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나는 그분의 발의 때 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남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천한 일, 종이나 하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 없으신 정결한 피 (보혈)로 이 철부지 제자들의 죄, 연약하고 실수 많은 우리들의 죄를 씻어 주시는 끝없는 사랑의 구세주 이신 것이다.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다’ 하는 베드로의 만류는 겸손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것이었다. 더러운 내 발을 어떻게 선생님이 닦아 주실 수 있냐고 거부한다면 이 더러운 죄인의 죄를 어떻게 이 보배로운 피로 닦아 주시냐고 거부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그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으니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없으니까 더욱 감사하고 황송하게 받으면 되는 것이다.
안 씻으면 너와 내가 상관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은 베드로는 이제 정반대로 전신목욕을 원한다. 필요한 것을 거부하는 베드로, 이제는 불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베드로이다. 그 배드로에게 예수님은 오버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3. 결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신 교훈이었다. 리더는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겸손하게 섬기는 자라는 것이다. 서로 자리 다툼하느라 상대방의 발을 씻겨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주와 선생이 된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너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더러운 발을 손으로 닦아 주는 것이고 무지를 은혜로 깨닫게 하는 것이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고 결국 승리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으로 직접 보여 주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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