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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말씀묵상]2020-03-18 마가복음 7: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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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lovejes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 조회 6,341회 | 작성일 20-03-17 20:12

본문

[본문묵상]

1. 작은 은혜 큰 믿음(24-30절)

사랑의 예수님께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시는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이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일반이다

이 여인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

이유는 어린 딸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다

귀신들림의 뚜렷하고 가시적인 현상은 인간성 상실이다.

사람답게 처신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사로잡혀 비인간화 된 것이다.

신약에서는 이 '더러운'이란 말을 귀신들린 자 앞에 빼놓지 않고 형용하고 있다.

외적인 더러움도 있겠지만 사람을 파멸 시키는 귀신은 더러운 존재다. (막 5:8)

이렇게 사람 구실을 못하는 그것도 어린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여인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린다.

누군가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그 권위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그 어떤 것에도 순종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여인은 예수님께 나오기엔 최악의 조건이었다.

일단 유대인이 아니었다. 

성경에 수로보니게라는 지명은 지금으로 어딘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같은 본문 마태복음에도 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태는 '가나안'여인으로 기록했다.

출신이 이방여인에다가 여자였고 게다가 더러운 귀신들린 딸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여인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이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여인이 예수님이 찾아 왔다는 것은 다음 장면에 비하면 그리 놀랍지 않다.

딸을 고쳐달라는 여인의 간구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시고 행동이신가?

심지어 마태복음에는 처음에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라고 기록한다.(마 15:23)

예수님은 언제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주님께서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인간의 외침에 한번도 이렇게 차갑게 외면하신 적이 없으시다.

여기 '자녀'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개'는 지금 예수님 앞에 엎드린 여인과 같은 이방인들이다.

지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도, 목적을 분석하기 보다는 그 다음에 보인 여인의 반응에 주목해보자

여인은 여기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세번째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장면이다.

주님의 말씀이 맞다는 것이다. 

You are right...맞습니다. 

주님 저는 그런 존재입니다. 

개 같은 존재입니다..

이 고백은 여인의 고백이자 우리의 고백이다.

하찮은 존재, 아무 쓸모 없는 존재, 감히 예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예수님 앞에 더는 자존심이고 머고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서 자기의 지위나 권력, 재물, 학력, 나아가 자존심을 따위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겸손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

나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다.

예수님 하신 말씀에 내 이해 관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무조건적으로 '아멘' 하는 것이다.

여인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개니까 개밥이라도 달라는 것이다.

이게 믿음이다. 

없으면 없는데로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 저것 가릴 처지가 못된다. 우선 내 딸을 살리고 봐야 한다. 내 문제를 해결하고 봐야 한다.

작은 은혜라도 주십시오 기도하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변화 시켜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 

예수님이 최후의 보루이다.

인생의 임계점이 누구나 있다. 

Critical Point가 있다.
작금의 시간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이때 누구를 바라보고 무엇을 의지하느냐가 중요하다.
여인은 즉시 예수님께로 나왔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이라면 볼 것도 없이 수석 졸업이다.
지금과 같이 어려움의 때는 믿음의 시험대라 보면 정확하다.
경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에 오직 붙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만 겪는 고난과 어려움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겨 낼 수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 스토리는 결국은 '해피 앤딩'으로 끝났다.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마태복음에는 분명히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칭찬하신다.(마 15:28)
본문에 '이 말을 하였으니'(29절)라고 나오는데 이 고백이 고침을 받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이다
우리도 이 같은 고백을 하길 원한다.

"저에게 부스러기 은혜라도 괜찮으니 주십시오."
어떤 은혜라도 좋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작은 은혜일지라도...

"예수님으로부터" 공급 받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이다.
오늘도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다.
그 분은 우리의 위로자이시고 보호자이시다.
여러가지 소식이 들려지고 있지만 오늘 이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모습이 되길 소망한다

2. 영적 불통장애 극복하기(31-37절)
이어서 사람들이 소통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다.
그는 귀먹고 말을 더듬는자였다.

안 들리니 말을 잘 못하는게 당연하다.
고달프고 힘든 인생이다.
예수님께서 여러 치유의 행동을 보이시는데 여기서는 아주 독특하다.
손가락을 양쪽 귀에 넣는다.

그리고 또 침을 손에 뱉어 그의 혀에 대신다.
이게 치료 행위로 적절하고 이해가 되는 모습인가?

마가복음 7장에 잘 이해하기 어려운 두번째 부분이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에바다' 하셨다.
친절하게도 마가는 이 단어를 풀이해 주었다.

뜻은 '열려라' 라는 뜻이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열려라 참깨' 주문이 갑자기 떠오른다.
이슬람 문화를 배경으로한 이 이야기는 창작이고 공상이며 인간의 주문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이다.

하늘을 향한 외침의 기도를 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다.

재활이 아니라 부활이다.
예수님의 이 '에바다' 탄식은 귀먹고 말 못하는 인류 모든 이를 향한 탄식의 기도이시다. (롬 8:26)
오늘 영적 귀먹어리로 살며 제대로 말도 못하는 나를 보시고 외치신 기도다.
이런 나를 예수님이 고쳐 주신다.

하늘의 권세로서 나를 새롭게 하신다.
매였던 것으로부터 자유케 하신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19)
천국의 열쇠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구원의 은혜다.

이것으로 인해 이미 땅과 하늘에서 열리고 풀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에 의해서 풀어진다.

닫힌 문이 열려진다. 

예수님 만이 우리의 열린문이시다. (요 10:7)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의 귀는 도무지 열리지 않으며 입은 닫혀 있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귀를 막고 있다.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런데 또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한다.
이 시대에 우리 모두는 영적 청각 장애를 앓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 고독하고 답답한 인생을 살았던 이 사람을 생각해 보라.
그런 그가 고침을 받고 처음에 들었던 음성이 바로 예수님의 음성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처음 말씀을 듣고 감격과 은혜에 빠졌던 그 시절로 되돌아 보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강제 '자가 대피' 된 적이 있었던가?
33절에 보면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셨다'고 나온다.
거급 말하지만 예수님과 일대일로 독대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각자 똑같은 환경이 주어졌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불통이 아니라 소통의 시간이다


[적용]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부르러기 은혜라도 좋으니 그것이라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자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어보니 귀를 더 쫑끗하고 들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비록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지만 더 눈과 귀를 더욱 집중하자.
우리의 귀가 세상 '가짜 뉴스'에 부화뇌동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더 기울이자.
하나님 오늘도 내 귀를 열어 주옵소서, 밝히 알게 하옵소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옵소서

[기도제목]
1. 수로보니게 여인은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시길 간구하였지만 그의 믿음은 큰 믿음이었습니다. 저에게 큰 믿음을 주옵소서.
2. 이 시간들이 귀막고 입닫은 불통의 시간이 아니라 예수님과만 온전히 소통하는 영적 귀가 열리는 축복된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3. 따로 만나 주시는 그때가 은혜의 때임을 알고 QT 시간을 더 사모하게 해 주세요.

4. 코로나 19가 더 이상 퍼지지 않고 잠잠하고 고요해지길 기도합니다.


뉴비전교회 선교담당목사 송영빈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20-04-18 09:10:03 교회안내게시판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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