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16-29 관계가 관건이다. 2022-01-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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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육목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 조회 3,033회 | 작성일 22-01-18 20:39본문
오늘 말씀은 두 문단으로 나눌 수 있다.
1) 6:16-21 바다 위를 걷는 예수
2) 6:22-6:29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첫째 문단은 짧지만 두 가지의 기적이 포함되어 있다. 먼저 예수께서 바다위를 걸어 배에 오는 기적이 나온다. 여기서 바다는 갈릴리 호수이다. 이 갈릴리 호수는 주변 지형 때문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 풍랑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오늘 말씀에도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6:18)고 적고 있다. 이 기상 조건 (풍랑) 자체가 배를 타고 힘들게 노를 저어 십여 리쯤 (3-3.5마일) 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예수님이 배 안에 계셨다면 바람과 파도를 꾸짖어 잠잠케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필 예수님도 안 계시고 제자들만 배 안에 있었다. 이미 두려움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이번에는 더 큰 공포가 닥친다. 파도가 이는 바다 위를 누군가가 배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아마 귀신 (유령)인 줄 알았을 것이다 (마14:26, 막6:49).
물위를 걷는 마술이라고 해서 보면 물 위에 투명한 아크릴 판 같은 것을 깔아 놓고 그 위를 걷는 눈속임인데 예수님은 그 호수 전체에 아크릴 판을 좍 깔아 놓은 것도 아닐 텐데 물위를 거침없이 걸어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불쌍한 제자들을 안심시키신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두번째 기적은 21절에 나오는데 영어로 보면 더 확실히 보인다 Immediately the boat reached the shore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그전에는 제자들이 열심히 노를 저어 조금씩 가던 배가 예수님이 배에 타자마자 즉시 건너편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한다면 그 배에 누가 타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바로 좀 전에 바다를 걸어오신 주님이 타고 있지 않은가? 바다를 걸으시는 분이 바다위로 배가 미끄러지듯이 쾌속정처럼 빠르게 가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짧은 문단에 이런 두 가지 기적 (표적)을 연속적으로 보여준 것은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이 무리들에게 하시는 말씀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6:26). 결국 무리들 (우리를 포함한 인간들)은 표적이고 기적이고 간에 우선 자기 배를 채우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예수님의 인간들을 향한) 뼈 아픈 말씀이고 불편한 진실이다. 풍랑위를 거침없이 걸어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진짜 모습도 이렇게 거침없이 지적하신다.
좀 살살 좀 하시지 그래도 예수님 만나보겠다고 그 먼 길을 배까지 타고 쫓아왔는데…아마 우리 같으면 멀리서 우리 교회 찾아오신 귀하신 분들 한테 (상처 받을까봐) 아예 그런 말은 꺼낼 생각도 못하지 않을까?
인제 오늘 말씀의 핵심이 나온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그리고 이 양식은 인자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랬더니 오병이어의 기적을 육적인 배를 채우는 것으로 재미를 본 그들이 예수님께 묻는다) (당신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시니)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님의 심플한 대답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예수님 자신)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자, 이제 솔직하게 ‘과연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예수님과의 관계 (믿음)에 중점을 두었나’ 생각해보자.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의 동기를 다 아시니까 거짓부렁 할 생각하지 말고.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예수님과 예수님을 보러 온 손님들을 대접하려고 열심히 음식 준비하느라 분주한 마르다, 바쁜 언니는 도울 생각도 안하고 예수님 발 앞에 앉아 고개를 치켜들고 예수님의 말씀에 푹 빠져 들어 있는 마리아. 우리는 보통 인간적으로 보면 마르다가 잘하는 것이고 마리아는 얄미운 동생이라고 생각할 텐데, 웬걸, 예수님은 오히려 마리아가 좋은 것을 택했다고 하신다 (눅10:38-42).
믿음이 일 (work)인가? 믿음 (신뢰)은 인격과 인격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 관계에 근거한 일은 믿음의 열매이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마음의 중심 (초점)을 말해준다.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가 먼저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분간할 줄 아는 지혜, 그리고 그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결단이 필요하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호숫가에서 밤새 고기 잡느라 수고한 베드로에게 맛있는 아침식사 (숯불 생선구이)를 준비해 먹이면서 말씀하신다. Do you love me?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는 이 세 번의 질문에 ‘네’ 라고 대답하면서 주께서 ‘아신다’고 반복 (강조)한다. 사랑도 관계이고 아는 것도 관계이다. 예수님은 사랑에 기초한 사역 (내 양을 먹이라)을 원하신다. 그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이 피워 놓은 숯불에 젖은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허기진 배를 맛있는 생선구이와 떡으로 채우면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서로 사랑을 고백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은 그리고 이렇게 아침식사를 준비해 놓고 먹이는 것은 자신이 베드로를 사랑하므로 묻는 것이다).
베드로는 앞으로 감당할 사역이 어떠해야 되는지 몸소 체험했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렇게 찾아와서 회복시키고 먹이는 것처럼 너도 내 양을 사랑으로 먹이라) 사랑이 사역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것, 아는 것, 사랑하는 것) 관계가 관건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관계 (앎)없이 하는 모든 일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그것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귀신을 쫓아냄, 많은 권능을 행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다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다 (마7:21-23). 참 무서운 말씀이고 심각하게 들어야할 말씀이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알고 있는 걸까? 예수님은 나를 알고 계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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