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2:1-16 하나님의 복음 (The Gospel of God) 2022-08-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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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육목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 조회 4,982회 | 작성일 22-08-24 06:42본문
8-24-22 (수) 살전2:1-16 하나님의 복음 (The Gospel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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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전서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즉 서신서이다.
그런데 1:1에 서두를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인 (성도)들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라고 한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sister의 이름을 딴) ‘데살로니가’라는 실제적인 로케이션 (장소)에 있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안에,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우선순위, 하나님 중심, 이것이 데살로니가 서신서, 아니 성경 전체의 주제이며 핵심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 안에 있는가?
바울이 등장하기 약 300년 전에 나타난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은 33세에 병으로 죽기전에 유럽과 아시아의 대부분을 점령했는데 그 넓은 지역에 그리스 문명을 남겼을 뿐 아니라 점령지 사람들에게 그리스 언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게 했다. 그것이 바로 헬라어 (그리스어)로서 복음이 전달될 문자 (내용을 담을 그릇)가 준비된 것이고 그 후에 나타난 로마 제국은 ‘팍스 로마나’라고 명명된 로마의 전성시대를 통해 로마 군대를 위해 길을 깔았다. 그러므로 그리스의 언어와 로마의 길을 통해 예수님의 복음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서 급속히 전파될 수 있었다. 현재 그리스와 로마는 예전의 막강했던 세력이 쇠퇴했지만 복음의 능력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
복음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복음의 계획, 복음의 목적, 복음의 전개, 복음의 전파, 복음의 내용, 전부 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그래서 복음을 전한 자는 바울이지만 ‘사도 바울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다 (2:2).
따라서 복음 전파의 동기도 역시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인데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면 바울 일행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2:4). 그러므로 바울 일행의 사역이 간사함이나 부정이라는 불순한 동기에서 난 것도 아니고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2:3)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 아시는 그 하나님께서 바울 일행이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증언하신다고 바울은 선언한다 (2:5).
바울은 이런 정직한 마음과 순수한 동기와 하나님이 증언해주시는 transparent한 사역을 하면서 사람한테 어떤 인기나 명예 (영광)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2:6).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도 즉 그리스도께서 세워 주신 사도로서의 권위를 가진 자이지만 그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유순하게 (gentle), 마치 젖먹이 아기를 돌보는 엄마처럼 사랑과 정성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대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즉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자신이 밤낮으로 일했다 (full time으로 돈을 벌었다)고 밝힌다. 이렇게 고정적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곳이 없이 스스로 돈을 벌어가며 사역하는 사람들을 텐트메이커 (tent maker), 자비량 선교사 또는 자비량 목사라고 한다. 영어로는 bi-vocational minister (or missionary)이다.
이렇게 바울이 사랑과 정성으로 교인들에게 대한 이유는 그들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부르사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었다 (2:12).
바울 일행이 사역을 감당하면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 일행에게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라고 한다 (2:13). 다시 말해서 바울이 전한 복음이 바울 자신이 연구하고 정립하고 전한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 (2:2)임을 인정하고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권위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순복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데살로니가 교회도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았다 (2:14).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울 일행을 쫓아내는 그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바울 일행들과 정반대로 (2: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다 (2:15). 그 결과 하나님의 노하심이 끝까지 (최고 수준까지) 차올라서 그들에게 임했다고 말한다 (2:16).
데살로니가 전서는 약 2000년 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편지이다. 성경학자들은 데살로니가 전서가 신약 성경 27권 중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는 갈라디아서 (주후 49년) 다음에 (주후 51년) 씌여진 것으로 추정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보내느라고 쓴 자신의 이 편지가 나중에 신약 성경에 포함되어서 2000년 동안 수많은 크리스찬들이 읽고 설교하고 성경공부하고 암송하고 인용하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베스트셀러로서 (성경책) 판매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진솔하게 자신과 교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눈 이 편지가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복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복음은 오늘 나의 개인적인 삶 속에서도 살아 역사하고 있다. 나의 삶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 안에 거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그게 바로 복음이고 하나님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멀리, 너무 거룩해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순간에만 있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도 역사하고 계신다. 교회에서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집에서 잠옷을 입고 있을 때에도,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웃고 말하며 식사할 때 뿐만이 아니라 집에서 가족들과 말없이 조용히 밥 먹을 때에도, 성가대 가운을 입고 무대에서 조명 받고 서서 찬양할 때 뿐만 아니라 혼자 운전하면서 차속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을 콧노래로 따라 부를 때에도, 헌금 봉투에 헌금을 써서 넣을 때 뿐 아니라 Amazon.com에서 무엇을 사려고 ‘Place Your Order’ 노란색 bar를 누를 때에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와 동행하고 계시다. ‘항상 함께’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24/7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성령님)을 투명 인간 대하듯, 어디 멀리 장기간 출장 나간 남편 대하듯, 안 보이고 안 계신 것처럼 대하는 격리심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경외심으로 살아야 겠다.
화려한 무대의 조명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박수를 받으며 멋있게 쓴 “성경”이 아니라 (자기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한테) 쫓겨 다니면서 침침한 호롱불 아래에서 안질로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부벼가며 (?)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생각하며“편지”를 썼을 바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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